한 해의 마지막 날
친구 몇에게 '사랑하는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전체 발신용 메세지를 쓰다가
그동안 하나둘씩 들어오는 메세지들이 모두 나의 이름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 그냥 블랙베리를 내려놓았다.
올해의 난 그런 사람.
마음은 어쨌든 그걸 표내는 일엔 소극적이었고, 나에게서 떠나는 것에 아팠으나 미련은 두지 않았다.
그저 나도 곧잘 잊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
그러나 그러기엔 아직 명치 끝이 아파오고.
평소의 12월 31일과는 달리 평균 속력 시속 90 킬로미터로 주파한 종합운동장-반포대교 간 올림픽대로 위에서 나는
한 해의 마지막 날 가능한 클리셰와도 같은 들척지근한 감상조차 없는
고작 휴일 하나 없는 신정 설날, 그 다음날 이어지는 워크숍, 백업해야 하는 업무만을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마치 고작 일곱 개밖에 쓰지 않은 올해의 이글루 포스팅과도 같은 메커니즘.
집으로 돌아와 아끼는 클렌징 젤로 깨끗이 세수하고 이글루 앞에 앉았다.
1.
올해의 나는 출생 이후 가장 적은 수의 책을 읽었다.
부끄러운 일이며, 한두장씩 넘기다 그냥 덮어둔 저 많은 책들에게 눈길 한번 보낸다
2.
봄여름가을의 나는 조깅을 즐기는 운동체였다. 11월 이후엔 좀체 뛰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러닝은 몇몇 힘든 때 나를 위로했다. 경로가 늘어날수록 복잡하고도 단순하게 마음은 정리되었고 순수한 의지만 남았다.
땀과 지구력은 조용하지만 근사한 보상이었다. 좋은 기억
3.
나의 두뇌는 급격히 퇴화하였다.
사소한 것을 곧잘 잊었고 말주변이 흐려지며 리부팅이라는 것이 매일 절실했다.
모두가 흩어지는 모래알 같다
4.
올해 가장 많은 지출을 한 내역은 공연, 코스메틱, 음반으로 집계되었다.
취향은 다분히 인디록이었고.
overall 소극적이었던 올해의 여러 활동 중 그래도 음악만은 많이 들었고 새로운 뮤지션을 찾는 즐거움도 누렸다
5.
올해의 공연 - 6월의 Ben Folds @멜론악스
6.
MGMT와 Arctic Monkeys를 모두 처음 만난 올해는 특별하지 않을 수 없구나.
7.
올해의 앨범.
올해 좋은 앨범이 무척 많았기에 무려 10개를 뽑았다(순위 없음). 뮤지션 여러분 사랑합니다.
Arctic Monkeys - Suck it and see
Metronomy - The English riviera
Fleet foxes - Helplessness blues
장기하와얼굴들 - 제2집
Cults- Cults
Justice -Audio, Video, Disco
검정치마 -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Beirut - The Rip tide
The Vaccines - What did you expect from The Vaccines?
The Black Keys - El Camino
8.
올해의 싱글
Just the way you are - Bruno Mars
그게 아니고 - 10cm
Pumped up kicks - Foster the people
Someone like you - Adele
9.
올해의 비디오 클립(이라기 보단 이 클립을 우연히 MTV에서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Lana del Rey - Video games
10.
올해의 영화(를 꼽을 만큼 성실한 시네필은 아니었다)
국내 오픈 순서대로.
블랙 스완
네버렛미고
트리 오브 라이프
11.
기억하고 싶은 이별
박완서 선생님
R.E.M
Amy Winehouse
12.
올해의 우상(idol)
김수현(a.k.a. 송삼동)
13.
올해의 보컬리스트
크리스티나 of 슈퍼스타 K
14.
올해의 전시
Tim Eitel 'The Placeholders' @학고재
15.
올해의 맛
Fell+Cole Gastronomic ice creams
타코 아미고
16.
올해의 코스메틱 프로덕트
- 스틸라 원스텝 코렉트
기대 안한 핀치 히터가 때린 우중간 2루타와 같은 이펙트의 감동.
- 비디비치 볼드 아이라이너 '스파클링 모스'
리뉴얼된 비디비치 아이라이너. 튀지 않고 깊이 있는 브라운 톤의 카키 컬러.
- 샤넬 쉬블리마주 클렌저
내가 세안제 따위에 10만원이 호가하는 카드를 긁지 않도록 주님께 기도하게 만든 제품.
- 나스 멀티플 '라구나'
매년 여름 브론즈 메이크업이 점점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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